깨질 때 하나님이 만나주십니다
사람들은 강해지기 원합니다. 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독일 신화에 나오는 영웅 지그프리트(Siegfried)는 용을 죽여 그 피로 목욕한 후에 강철처럼 단단한 피부를 갖게 되었고 이후로는 어떤 칼도 뚫지 못하는 무적의 영웅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역시도 그와 같이 어떤 상처도 받지 않는 단단한 피부를 원하고 자기자신을 위한 견고한 성을 쌓아보려고 애씁니니다. 문제는 그러다가 그 견고한 성 안에 갇혀서 결국 시름시름 죽어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혹자는 차라리 단단한 자기껍질에 둘러쌓인 마음보다는 상처를 잘 받는 마음이 훨씬 낫다고 이야기합니다. 깨지기 쉬운 창이라도 있어야 밖이 보이고 하늘이 보이고 이웃이 보인다는 거지요.
외부의 환경이 좋지 않다고 창문을 벽돌로 다 막아버리면 빛도 잃게 되고 그 안의 생명체는 서서히 죽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깨지기 쉬운 창이라도 필요합니다. 단단한 껍질에 갇혀서 혼자 사는 삶보다는 사람들과 부딪히며 상처받은 삶이 더 아름답습니다. 인생에는 아픔도 있고 상처도 있습니다. 그래도 담을 치고 요새를 쌓지 않는 인생이 귀한 까닭은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상처받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아니라 나만의 안전을 꾀하려는 이기적인 나에 대해서 저항하는 시간을 통해서 자라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의 무능함은 하나님의 전능함을 경험할 수 있는 토양입니다. 모세의 광야에서의 40년은 자신의 무능함을 철저하게 발견하는 시간이었고, 그 시간이 있었기에 떨기나무 속에서 하나님의 전능함을 볼 수 있었던 겁니다. 헨리 나우엔 역시도 우리 모두가 상처받은 치유자(wounded healer)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랑 안에 있으면 상처가 상급이 됩니다. 사람이 상처로 인해 하나님을 꿈꿀 때 하나님도 사람을 꿈꾸고, 사람이 상처로 인해 하나님을 필요로 할 때 하나님도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예수님은 강철갑옷을 포기하시고 상처의 창문을 통해 하늘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몸을 깨실 때(break the bread) 진정한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도 깨질 때 비로소 나눌 수 있는 존재로 바뀔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자리까지 내려오셔서 이해해 주시고 참아주시고 배려해 주신 이 주님의 사랑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한주간 동안 여러분의 말과 행위로 여러분의 삶 속에 다시 재현하며 살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