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흙이다!
사순절의 묵상은 늘 재(ash)로 부터 시작합니다. "너는 죽고 나면 아무 것도 없다. 단 한 줌의 재일뿐인데... 왜 그렇게 잘난 척 하면서 무언가를 아는 것처럼 사니?"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별 거 아닌 존재인지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이번 사순절은 그것을 더욱 깊이 통감하며 시작되었습니다. 수요일 오후 플로리다 더글러스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으로 아직 피어나지도 못한 꽃과 같은 수많은 학생들이 죽었습니다. 어린 딸의 어이없는 죽음에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서 절규하는 한 엄마의 아픔과 분노의 외침을 TV로 보면서는 함께 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슴 아픈 이웃과 함께 애통해 하면서 또 다시 나 자신에 대해서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 겁니다.
오늘도 별 일 없이 지나간다고 생각하며 무심히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의 주인인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은혜의 시기로 사순절을 맞으면서 '나도 죽으면 재가 될 수 밖에 없는 존재구나... 그와 하나도 다르지 않구나' 하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면서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보고 회개하는데 얼마나 인색한 지 모릅니다. 모였다 하면 남 얘기로 시작해서 남 얘기로 끝을 냅니다.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일은 쉽게 하면서도 나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불성실하게 살았는지, 얼마나 스스로 교만해하면서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서 살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지금 여기에 존재하게 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여전히 우쭐대고 사는 나 자신의 죄악을 하나님께 고백하지 못하고 사순절을 시작하지는 않았습니까? "하나님, 나는 흙입니다." 숨이 막힐 정도로 가슴을 치게 됩니다.
우리는 참 간사해서 편한 것만 찾습니다. 몸이 하자는대로 끌려다니면서 영적으로 메마르게 살면서도 철저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위선의 모습으로 살려고 합니다. 저는 이 사순절이 그런 자신의 모습을 고백하고 무한한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내가 얼마나 유한한 존재인지 고백하는 40일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사순절 시작인 재의 수요일에 우리 신앙인들은 “사람은 흙에서 태어나서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라”(창3:19)는 말씀과 함께 우리의 돌아가야 할 지점을 생각하고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켜 신앙 성숙의 기초를 다지는 시간이 되기를, 흙이 되기 전에 그 하나님을 머리로만 이해하기 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그리고 지금도 살아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며 더욱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사순절이 되기를 기도합니다.